[일반] 정치도 설교할 수 있다면, 어디까지가 설교인가?
합동은 정치·인권·사법까지 ‘성경으로 분별’ 명문화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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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설교 허용 여부 넘어 ‘성경이 정치를 판단하나, 정치 판단에 성경을 동원하나’가 쟁점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가 정치와 사회 문제를 설교에서 다룰 수 있도록 헌법 예배모범의 범위를 구체화하는 개정 절차에 들어간 가운데,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에서 진행된 손현보 목사의 정치 관련 설교 연구가 한국교회에 또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정치 문제를 강단에서 다룰 수 있는가를 넘어, 정치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설교로 인정될 수 있느냐는 문제다.
합동총회는 제111회 총회에서 헌법 예배모범 제6장 제2조에 윤리·도덕·역사·사회·국가·인권·정치·사법·이교·이단 등을 “성경으로 분별”하도록 선포하고 변증한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개정안을 처리했다. 다만 헌법 개정은 전국 노회 수의를 거쳐야 최종 확정된다. 실제 합동은 지난해 총회가 결의한 여성 강도사 관련 헌법 개정안이 올해 노회 수의 과정에서 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해 최종 무산된 바 있다.
합동의 기존 신학정체성 선언문에는 이미 동성애와 성윤리, 생명윤리,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관한 교단의 입장이 담겨 있다. 이번 개정안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인권·정치·사법과 같은 문제를 목회자가 설교에서 성경적으로 분별하고 선포·변증하는 행위를 예배모범에 구체적으로 명시하려는 성격을 갖는다.
그렇다면 정치 문제를 강단에서 다룬다는 것과 정치적 판단 자체가 설교의 중심이 되는 것은 같은 것일까.
합동 “정치도 성경으로 분별”, 설교 대상의 범위 넓혀
합동의 개정안에서 주목할 부분은 ‘정치’라는 단어 자체보다 그 앞에 붙은 ‘성경으로 분별’이라는 표현이다.
개정안은 정치와 국가, 인권, 사법 등의 문제가 설교에서 금지된 영역이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문제를 성경을 통해 판단하고 이를 선포하거나 변증할 수 있다는 방향이다. 기존 신학정체성 선언문이 동성애와 생명윤리 등에 관해 교단이 ‘무엇을 믿는가’를 정리했다면, 이번 예배모범 개정안은 목회자가 그러한 사회 현안을 ‘어떤 영역에서 설교할 수 있는가’를 구체화하는 셈이다.
이 같은 흐름은 최근 고신에서 벌어진 손현보 목사 설교 논쟁과 맞닿는다. 고신 제75회 총회는 서울중부·전라·충청서부노회의 청원을 받아 손 목사의 2025년 1월 5·12·19·26일 주일설교 네 편과 목사의 정치활동, 교회의 정치 참여 문제를 신학부와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에 맡겨 연구하도록 했다.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는 약 1년간 연구한 뒤 보고서를 총회에 제출했다.
논쟁의 직접적 배경이 된 1월 5일 설교에는 당시 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제목에 직접 언급한 정치적 표현이 사용됐다. 『정치를 외면하는 교회』는 이 설교를 둘러싼 논쟁을 한 목회자 개인의 정치적 성향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가 정교분리와 개혁주의 정치신학을 충분히 정립하지 못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책의 저자들은 교회가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에 종속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와 사회의 불의, 성경적 가치와 충돌하는 정책과 제도에까지 침묵하는 것은 정교분리의 올바른 이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고신 교수회가 문제 삼은 것은 ‘정치’만이 아냐
그러나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보고서의 핵심은 정치 문제를 설교에서 다뤘다는 사실 자체에만 있지 않았다.
교수회는 고신총회가 신조로 받아들이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교리문답을 기준으로 설교의 원리를 먼저 정리했다. 설교의 주체와 내용, 방식, 목적 등을 검토한 뒤 손 목사의 네 편 설교를 분석했으며, 실제 평가는 특히 내용·방식·목적에 집중됐다.
내용의 측면에서는 설교에서 성경본문과 은혜언약의 구조보다 정치 상황에 대한 판단과 특정 정치인·정당에 대한 비판이 중심적으로 작동했다고 평가했다. 방식에서는 성경본문에서 정치적 적용이 도출되기보다, 이미 설정된 정치적 판단을 성경본문이 뒷받침하는 구조가 나타났다고 봤다. 목적 면에서도 회심과 구원, 성화보다 정치적 위기의식 공유와 행동 촉구의 비중이 커졌다고 판단했다.
이를 정리하면 교수회의 문제 제기는 ‘정치를 말해서 안 된다’는 주장과는 차이가 있다.
설교의 일반적인 흐름을 성경본문→해석→신학적 원리→현실 판단→적용으로 본다면, 교수회는 손 목사의 일부 설교가 현실 정치에 대한 판단→정치적 결론→성경본문의 제시→행동 촉구로 진행됐다고 평가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합동의 이번 헌법 개정안과 흥미로운 접점이 생긴다. 합동도 정치 문제를 무제한적인 설교 대상으로 규정한 것이 아니라 이를 ‘성경으로 분별’해야 한다는 구조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합동이 설교가 다룰 수 있는 ‘대상’을 넓혀 규정하려 한다면,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는 설교가 그 대상을 다루는 ‘방법과 목적’을 문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예언자적 강단”과 “정치적 강단” 사이
손 목사와 『정치를 외면하는 교회』의 저자들은 이러한 교수회 판단에 반론을 제기한다. 책은 정교분리가 국가와 교회의 제도적 영역을 구분하는 원리이지, 신앙과 정치의 완전한 분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국가 권력과 사회의 불의를 성경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교회의 예언자적 책무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이를 신사참배에 저항했던 고신의 역사와 개혁주의 정치신학의 전통에 연결한다.
책의 목차 역시 이 논쟁을 정면으로 다룬다. ‘정교분리의 왜곡과 예언자적 설교의 회복’, ‘개혁주의 신학은 국민저항권을 인정하는가’, ‘강단에서 정치 문제를 어디까지 포함할 수 있는가’,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보고서에 대한 신학적 검토’ 등이 주요 장으로 배치돼 있다.
다만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의 보고서가 고신총회의 공식적인 최종 판단이 된 것은 아니다. 제76회 고신총회는 교수회 보고서를 교단의 공식 입장으로 채택하지 않고 참고자료로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고신총회가 손 목사의 설교를 잘못된 설교로 확정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결국 합동의 헌법 개정안과 고신의 손현보 목사 설교 논쟁은 서로 다른 경로에서 같은 질문에 도달한다.
정치와 사회 문제를 설교할 수 있느냐는 질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치·인권·사법 문제를 강단에서 다룰 수 있다고 할 때, 어떤 성경 해석을 통해 현실을 판단할 것인지, 목회자의 정치적 판단과 성경의 권위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 또 설교가 성도의 정치적 행동을 어디까지 요청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쟁점으로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