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개혁 신학의 거인 R. C. 스프로울의 생애와 유산
본문
오늘날 성경의 진리를 어떻게 지키고, 그 진리를 어떻게 평신도에게 전할 것인가? R. C. 스프로울은 이 일에 한평생 헌신한 인물이자, 교회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일깨운 신학자였다. 스프로울의 든든한 동역자였던 저자 스티븐 니콜스는 이 전기에서 스프로울의 전 생애, 그의 사역과 유산을 집중 조명한다. 생전 스프로울과의 인터뷰나 동역자들과의 인터뷰, 스프로울의 소장 도서 갈피갈피의 메모와 각종 노트 등 세심히 수집한 자료들을 종합해 저자가 그려 보이는 스프로울을 보며, 독자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이끌려 진리와 삶이 어긋나지 않도록 분투했던 한 사람을 생생히 그려 볼 수 있다.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시대에 맞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과연 ‘하나님’이신가? 그리스도인이더라도, 많은 이가 은연중에 하나님을 내가 필요할 때 부르면 달려오는 도우미, 지친 마음을 달래 주는 상담사쯤으로 여긴다. 스프로울은 이런 자기편의적인 하나님관과 싸우며 모든 교회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로 알기를 원했다.
스프로울에게 ’거룩함‘은 하나님의 여러 속성 중 하나가 아니었다. 거룩함은 도덕적 완전 그 이상, 하나님의 존재 자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나님의 사랑, 공의, 진노는 이 거룩함의 바탕 위에서 이해된다. 스프로울은 당대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를 ’하나님에 대한 얕은 이해‘라고 보았다. 하나님에 대한 견해가 왜곡되면 다른 모든 교리의 왜곡을 피할 수 없다. 스프로울의 사역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바로 아는 일이 있었다. 그가 가르치고 쓰고 논쟁한 모든 일은 여기서 출발했다.
평신도에게 신학을
스프로울은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칼뱅, 에드워즈로 이어지는 정밀한 신학을 몸에 익힌 학자였지만, 신학교 강의실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를 주축으로 1971년 설립된 후 현재는 국제적 교육 사역 단체로 자리매김한 리고니어 미니스트리는 처음부터 평신도 교육을 위한 곳이었다.
스프로울은 당대 교회가 ‘신학적 문맹’의 시대에 있다고 진단했다. 리고니어 사역을 통해 그는 평신도의 신학적 문해력을 향상하려 애썼다. 기본이 되는 ‘성경 읽는 법’에서부터 ‘칭의’나 ‘예정’처럼 까다로운 교리까지 카세트테이프, 잡지, 라디오 방송 등에 담아 강의실 밖으로 내보냈다. 신학을 목회자와 신학자에게서 평신도에게로 펼쳐 놓은 일이 스프로울이 리고니어 사역을 통해 한 가장 큰 공헌이었다. 그는 이 사역을 통해 진리를 알고, 진리를 분명하게 말하며, 진리대로 살기를 열망하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을 길러 내기를 소망했다.
우정을 잃더라도 복음을 내어 줄 수는 없었다
1970년대에는 성경의 무오성을 지키는 싸움이, 1980년대에는 세속주의에 맞서 기독교를 변증하는 싸움이, 1990년대에는 이신칭의와 전가 교리를 지키는 싸움이 스프로울을 기다리고 있었다. 1994년, 복음주의와 가톨릭 지도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로서 복음을 함께 증언하기로 결의하며 공동 선언문(ECT)을 발표했다. 양측은 사람이 믿음을 통해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종교개혁의 핵심인 ‘오직 믿음’과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는 말하지 않았다. 양측의 차이를 나열한 목록에서도 ‘칭의’는 빠져 있었다. 스프로울은 “그렇다면 복음이란 무엇인가?” 물었다. 그리스도의 의가 오직 믿음으로 우리에게 전가된다는 진리를 공유하지 않은 채 같은 복음을 말할 수는 없었다. 선언문에 서명한 이들 중에는 스프로울이 자신의 전우라고 여겼던 J. I. 패커도 있었다. 패커가 이신칭의를 복음의 ‘중심’이라 말할 때, 스프로울은 그것이 복음의 ‘본질’이라고 맞섰다. 이 논쟁으로 그는 패커, 찰스 콜슨과의 우정을 잃었다. 그는 이 시기를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힘든 때로 기억했다. 그러나 그를 정말로 슬프게 한 것은 우정의 균열이 아니라 복음이 입은 상처였다.
스프로울이라는 사람
스프로울의 책을 여러 권 읽은 독자라도 이 전기에서 처음 만나는 스프로울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야구, 농구, 미식축구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스프로울은 운동 장학생으로 대학에 들어갔고, 평생 고향 피츠버그의 야구팀 파이리츠와 미식축구팀 스틸러스를 열렬히 응원했다. 말년에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야구 선수’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는 운동선수다운 투지와 끈기로 신학의 전장에 섰고, 경기장에서 모든 것을 쏟아 내는 선수처럼 가르치고 설교했다.
그는 철저한 개혁주의자였지만 근본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세상과 담을 쌓는 것이 경건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 살도록 부름받았으며, 경계해야 할 것은 세상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지운 세속주의라는 것이 그의 확신이었다. 그래서 그는 문학과 영화와 미술을 즐겼고, 골프장에서 만난 믿지 않는 친구들과도 허물없이 어울렸다.
스프로울은 쾌활하고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동료들이 그를 ‘한 줄 농담의 왕’이라 부를 만큼 그가 있는 자리에는 늘 웃음이 따랐다. 저자는 스프로울의 유머에도 신학적 이유가 있었다고 말한다.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난 사람만이 삶의 참된 기쁨을 알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떨었던 그는 누구보다도 크게 웃었다.
이런 그의 사랑이 가장 깊이 머문 곳은 가정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처음 만난 베스타와 결혼해 57년을 함께하며, 스프로울은 아내와 가족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겼다.
사람은 점점 커지고 하나님은 점점 작아지는 시대, 스프로울이 세상을 떠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그의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스프로울은 자신이 가르치고 선포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사람들이 제대로 보기를 원했다. 스프로울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마침내 그가 평생을 바라본 거룩하신 하나님을 함께 바라보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