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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설교는 분석이 아니라 내러티브이다”

씨디엔 기자
작성일 2026-08-30 09:57

본문

원래 성경은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역사에서부터 다가올 새 하늘과 새 땅을 예언하는 역사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러티브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성경은 하나의 이야기이고 사건이란 말입니다. 내러티브란 라틴어의 narrare에서 유래한 말인데, 무슨 말이냐면, “말하다, 이야기하다”라는 말입니다. 내러티브라는 말은 이야기식이라는 말입니다. 내러티브를 스토리텔링과 혼합을 해서 사용하기도 하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스토리텔링은 어떤 내용을 전달하는 과정을 말한다면, 내러티브는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과 전달 방법까지를 함께 아우르는 문학적 방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러티브란 예술적인 문학의 한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러티브도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헬라적 내러티브와 히브리적 내러티브입니다. 헬라적 내러티브는 주로 분석하고 증명하고 논증하며 설득하는 방법이라면, 히브리적 내러티브는 설득보다는 어떤 사건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이 스스로 감동하고 상상하도록 하는 문학적 장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구전 이야기로 쭉 내려오는 내용을 히브리적 내러티브 방식의 문장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이 내용은 이연길 목사님이 쓰신‘내러티브로 성경읽기’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물론 저는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이미 내러티브 설교를 하였고 이미지와 성경적 상상력을 가지고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걸 알아야 합니다. 원래 성경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믿음의 계보를 통해서 구전, 내러티브로 전달이 되고 계승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전을 바탕으로 해서, 그러면서도 당연히 하나님의 절대 영감을 받아서 모세를 비롯하여 또 다른 성경 기록자들도 그 이야기를 문장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세 5경도 어떨 때는 역사서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역사가 어떻게 기록되었습니까? 내러티브 식으로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성경을 자꾸 분해하고 분석하고 증명하고 그걸 가지고 설득하려고 합니다. 특별히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성경을 이야기로 보는 게 아니라 자꾸 분석하고 분해하다 보니까 명제적 설교가 되고 대지 중심의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분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성경도 카이아스틱 스트럭쳐(Chiastic Structure, 대차대조 구조)적으로 기록된 부분이 있습니다. 그 카이아스틱 구조마저도 자연스럽게 내러티브로 전달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성경은 분석하고 분해하기 이전에 먼저 이야기 그 자체로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성경은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서 성령의 영감으로 함축해서 요약을 한 영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3/4이 내러티브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명제적 설교와 대지 설교는 설교자가 설교하기는 편할지 모르지만, 청중에게 어떤 감동이나 임팩트가 적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과거에 이성이 중심이 될 때는 그게 가능했지만, 요즘은 감성 중심의 시대이기 때문에 설교가 드라마틱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대지보다는 원포인트 중심의 드라마틱한 강해 설교를 해야 합니다. 물론 강해설교라고 해서 해돈 로빈슨이 주장하는 그런 강해 설교를 말하는 게 아니라 설교가 극화되고 드라마틱해야 합니다. 저도 아주 옛날에는 명제적 설교, 대지 중심의 설교를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때부턴가 성경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시대의 흐름도 간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여전히 원포인트 내러티브 설교를 합니다. 이는 설교학 교수인 신성욱 교수님의 ‘원포인트의 드라마틱한 강해설교’라는 책에 소개된 주장이기도 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원포인트 내러티브 설교를 계속해서 지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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