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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는 밀알이 되겠다”던 교갱협 30년…무슨 열매를 맺었나
제비뽑기 선거제·한목협·총신 정상화·자기갱신 운동 족적

유현우 기자
작성일 2026-08-17 17:48

본문

금권·지역·교권주의는 여전30주년, 이제 질문은 교갱협 자신에게

우리는 썩는 밀알이 되고자 합니다.”

199637일 사랑의교회에 모인 140여 명의 목회자 앞에서 고() 옥한흠 목사가 던진 말은 교회갱신을위한목회자협의회(교갱협)의 출발점이 됐다. 교회를 바꾸겠다고 나서기 전에 목회자 자신부터 회개하고 갱신하자는 것이었다.

30년이 흘렀다. 교갱협은 올해 제31차 영성수련회를 맞았다. 그렇다면 이제 창립 당시의 선언을 결과의 관점에서 되물을 필요가 있다. 밀알이 썩는 이유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라면, 교갱협은 지난 30년 동안 무슨 열매를 맺었는가.

금권선거에 던진 승부수 제비뽑기

가장 가시적인 성과 가운데 하나는 예장합동 총회 임원선거 제도 개혁이다. 1990년대 교단 선거를 둘러싼 금권과 계파정치 문제가 계속되자 교갱협은 제비뽑기 선거제 도입을 추진했다. 1997년 제2차 영성수련회에서는 약 300명의 목회자가 총회 임원선거 부정선거 감시단 참여를 자원하기도 했다.

수년간의 논의 끝에 2000년 제85회 총회에서 제비뽑기 선거제 도입이 결정됐고, 2001년 제86회 총회부터 시행됐다. 이후 제도 자체를 둘러싼 논란과 변화가 있었지만, 적어도 금권선거를 교단 정치의 불가피한 현실이 아니라 개혁해야 할 구조적 문제로 공론화했다는 점은 교갱협이 남긴 중요한 흔적이다.

교갱협은 자신들이 또 하나의 교권세력이 되는 것도 경계했다. 1997년 교갱협 임원이 부총회장 선거에 출마하자 임원직을 사퇴하도록 했고, 역대 대표회장들도 부총회장 출마를 거부했다. 남의 권력욕을 비판하면서 스스로 같은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자기갱신의 원칙이었다.

교단의 담장을 넘어한목협과 총신 정상화

갱신운동은 예장합동 내부에만 머물지 않았다. 교갱협은 장로교 목회자들의 연대에 이어 1999년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 출범의 주요 산실 역할을 했다. 교단과 신학적 차이를 넘어 한국교회의 일치와 갱신, 사회적 책임을 함께 고민하는 범교단 목회자 연대로 확장된 것이다.

총신대학교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목소리를 냈다. 특히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총장 퇴진과 정관 정상화 등을 요구하며 성명과 공청회, 시위와 기도회 등을 이어갔다. 교단 직영 신학교가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공교회의 신학교로 존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이 흔들릴 때에는 이단 영입 문제 등에 대응했고, 총회 파행과 지도부의 도덕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성명과 기도회를 통해 자정을 촉구했다.

그러나 교갱협의 가장 오래된 열매는 제도보다 목회자가 먼저 갱신돼야 한다는 질문을 30년간 놓지 않았다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1996년 시작된 영성수련회는 올해 31회를 맞았다. 코로나19로 대면집회가 어려웠던 시기에도 온라인으로 이어졌다. 목회기술을 배우는 세미나보다는 말씀과 기도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중심에 놓았다. 지역협의회와 장로섬김수련회, 젊은목회자포럼, 담임목회자·부교역자 컨퍼런스, 목회멘토링 등도 여기서 파생됐다.

그런데 30년 전 문제가 왜 지금도 남아 있나

성과만으로 30년을 평가하기에는 불편한 질문도 남는다. 교갱협이 맞섰던 금권주의와 지역주의, 교권주의가 사라졌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비뽑기 선거제 역시 지속적인 논쟁과 제도 변경을 겪었다. 총회 정치에서 학연·지연·지역 구도가 반복되고, 교권을 둘러싼 갈등과 목회자 윤리 문제도 한국교회의 신뢰를 흔들고 있다.

교갱협 내부에서도 교단 정치에 적극 참여해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입장과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거리를 두고 목회자 영성과 자기갱신에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 사이의 긴장은 계속됐다. 정치와 거리를 두면 현실 문제에 침묵한다는 비판을 받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또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비칠 수 있는 딜레마다.

교갱협의 30년을 두고 전 대표회장 김경원 목사가 남긴 평가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교갱협이 존재해 있었기에 이만큼이라도 덜 나빠질 수 있었다.” 성과를 말하는 동시에 한계를 드러내는 표현이다. 교단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했지만 더 나빠지는 것을 막아온 방파제였다는 평가이기 때문이다.

30년 뒤, 질문은 교갱협 자신에게 돌아와

교갱협 30년을 정리한 이상화 목사는 이 운동을 지탱해 온 정신을 순수성·자발성·지속성·전문성과 탁월성·연대성으로 정리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를 기념하기 위한 훈장이기보다 앞으로 스스로를 검증할 기준에 가깝다.

30년 전 교갱협은 한국교회를 향해 갱신을 요구했다. 이제 그 질문은 교갱협 자신에게도 돌아온다.

목회자는 갱신됐는가. 교회는 갱신됐는가. 교단은 달라졌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교갱협 자신은 갱신됐는가.

썩는 밀알의 가치는 얼마나 오래 땅속에 있었느냐가 아니라 결국 어떤 열매를 맺었느냐로 드러난다. 교갱협의 다음 30년 역시 지난 역사를 얼마나 자랑하느냐보다, 30년 전 자신들이 던졌던 질문을 오늘 자신에게 얼마나 엄격하게 적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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