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을 위한 손성무 목사의 30년] 3부 좌초된 연합, 지워 버린 이름
본문
더 큰 연합을 향한 시도
274 얼라이언스를 떠난 뒤에도 그는 연합의 부르심을 포기하지 않았다. 청소년 2,500명에서 3,000명이 참여한 오션 컨퍼런스를 열었다. 조직 없이 여러 교회와 단체가 유기적으로 협력했고, 이름 있는 목회자뿐 아니라 청년들도 메신저로 세웠다.
그 무렵 세계 선교 전략 네트워크인 콜투올(Call2All)의 마크 앤더슨 측과 2016년 한국대회를 열기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계획은 일산 킨텍스에서 리더 집회 5,000명, 일반 집회 15,000명이 참여하는 선교대회를 개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준비 과정에서 함께하던 국내 사역자들의 연합에 균열이 생겼다. 손 목사가 미국에 2주 동안 머무는 사이 갈등이 커졌고, 귀국했을 때는 이미 관계를 수습하기 어려운 상태가 돼 있었다. 그는 구체적인 갈등의 내용이나 책임 소재를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대회는 이미 국제적으로 체결한 약속이었다. 유기적 관계의 연합으로 준비해 오던 동력이 사라지자, 남은 일정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결국 준비위원회와 조직을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대회는 예정대로 열렸지만 킨텍스에 모인 인원은 약 3,000명이었다. 애초 목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그를 무너뜨린 것은 15,000명과 3,000명이라는 숫자의 차이가 아니었다.
“요한복음 17장의 그 기도를 위해서 저는 모든 것을 깨뜨리고 달려왔는데, 정작 함께하던 연합 자체가 좌초돼 버린 겁니다.”
2년 동안 그를 붙든 질문
대회가 끝난 뒤 그는 약 2년 동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실패한 행사의 책임이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참석 인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깊은 질문이 그를 붙들었다.
목회자들은 처음 부르심을 받을 때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결단한다. 그러나 교회가 성장하고 사람이 모이며 영향력이 생기면, 자신이 세운 자리와 사역을 내려놓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연합을 말하는 사람들조차 자기 이름과 공로, 영향력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과연 누가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그는 이미 예수촌교회를 해체하고, 자신이 세운 274 얼라이언스를 떠나면서 자신의 자리와 영향력을 반복해서 내려놓아 왔다. 오히려 그 모든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붙들어 온 연합이 좌초된 현실 앞에서, 이제도 이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하는지를 묻는 시간이었다.
‘결국 누구도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없는 것인가. 연합을 위해 자신의 이름과 자리를 실제로 내려놓는 삶은 불가능한 것인가.’ 약 2년 동안 이 질문과 씨름한 끝에 그가 내린 답은 새로운 사역이나 더 정교한 조직이 아니었다.
“주님, 이런 사람이 없다면 저라도 그 길을 가겠습니다.”
연합의 실패를 다른 사람들의 책임으로 남겨 두는 대신, 자신이 먼저 이름도 자리도 없이 사라지는 길을 끝까지 살아 내겠다는 결단이었다. 그 결단은 곧 자신의 사역명과 교회 이름을 바꾸고, 세상에 남아 있던 자신의 기록을 지우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손종태에서 손성무로
그는 사역명을 손종태에서 손성무로 바꿨다. ‘이룰 성(成)’에 ‘없을 무(無)’였다.
“빌립보서 2장에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입으셨다고 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He made himself nothing’이라고 번역돼 있습니다. 자신의 영광과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종의 자리까지 낮아지셨다는 뜻입니다. 자격은 없지만 그 주님의 길을 흉내라도 내고 싶었습니다.”
이름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진행교회라는 이름도 손종태라는 이전의 사역과 강하게 연결돼 있었다. 그는 다섯 개의 후보를 놓고 교인들이 투표하게 했다. 그렇게 정해진 이름이 ‘처음그교회’였다.
그 뒤 한 달 동안 자신의 기록을 지웠다. 설교 영상과 칼럼뿐 아니라, 출간한 지 몇 달 만에 3쇄를 찍은 『갈망』도 출판사에 절판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책에 담긴 지난 10년의 여정 자체를 부정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이름과 사역을 남기는 기념비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약 3년 동안의 방식은 단순했다. 유튜브에 아무것도 올리지 않았고 글도 발표하지 않았다. 집회 요청이 오면 두 가지 조건을 걸었다. 포스터에 자신의 이름과 사진을 넣지 말 것, 집회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지 말 것.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가지 않았다.
그에게 이 시기는 사역을 포기한 은둔이 아니라, 사역과 이름이 분리될 수 있는지를 자신에게 묻는 시간이었다. 『갈망』이 기록한 10년이 하나님을 향한 열망을 따라 밖으로 달려간 시간이었다면, 이어진 무명의 3년은 그 갈망 속에서 자신의 이름마저 비워 내는 시간이었다.
다시 나오라는 부르심
무명의 시간이 끝난 것은 코로나 시기였다. 이제 다시 나오라는 마음을 받았다고 그는 말했다. 자신의 이름을 회복하거나 과거의 영향력을 되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말씀을 전해야 할 때가 왔다고 받아들였다. 그 무렵부터 유튜브에 설교를 올리기 시작했다.
현재의 에하드하우스는 처음그교회에서 전환한 공동체다. 전환의 계기는 다시 목회 현장에서 시작됐다. 두 차례에 걸쳐 청년 70명가량을 분립개척으로 내보낸 뒤, 공동체에는 주로 50대와 60대 성도들이 남았다. 그는 성도들의 기도가 개인과 가족의 필요를 넘어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품는 기도로 자라가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다.
그가 먼저 한 일은 조직 개편이 아니라 설교였다. 본질적인 교회, 복음, 하나님 나라, 제자를 주제로 4주 동안 말씀을 전했다. 그 뒤 공동체의 전환을 교인들의 투표에 부쳤고, 83%가 넘는 찬성으로 결정됐다.
‘에하드’는 히브리어로 ‘하나’를 뜻한다. 신명기 6장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라는 고백에서 온 말이면서, 그가 30년 넘게 붙들어 온 요한복음 17장의 하나 됨을 담은 이름이다.
에하드하우스는 특정한 교회나 사역의 이름을 크게 세우기 위한 공동체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성취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붙들고, 그 나라가 교회와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공동체다. 말씀과 훈련, 연합과 목양 역시 별개의 사역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를 구하며 살아가도록 세우기 위한 과정이다.
남기고 싶은 것
그의 30년 사역에는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사람이 모이고 사역이 자리를 잡을 때마다 그는 그것을 더 크게 만드는 대신, 자신이 붙들고 있는 것은 없는지 물었다. 70명이 모인 성경공부를 해체했고, 200명이 넘게 모인 예수촌교회를 해체했다. 자신이 설립한 274 얼라이언스를 떠났고, 연합이 좌초된 뒤에는 자신의 이름과 기록까지 지웠다.
그의 모든 판단과 방식이 언제나 완전했던 것은 아니다. 조직을 지나치게 경계해 사람과 공동체를 안정적으로 돌보지 못한 한계도 있었고, 자신이 받은 비전의 속도를 다른 사람들이 따라오기를 기대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연합을 자기 사역의 확장 수단으로 삼지 않으려 했다는 방향만큼은 30년 동안 일관됐다.
이제 그가 다음 세대에 남기고 싶은 것은 손성무라는 이름도, 하나의 거대한 조직도 아니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서로 하나 되며, 자신의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려놓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계속 일어나고, 그들을 통해 더 많은 열매가 맺힌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나의 지난 사역이 그 길을 여는 데 작은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는 요한복음 17장의 기도를 교회가 아직 충분히 살아 내지 못한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라고 말한다. 자신의 이름과 기록을 지우고 보낸 무명의 3년은 그 기도에 삶으로 응답하려는 한 사람의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그 응답은 3년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시 공개적으로 말씀을 전하고 사역의 자리로 나왔지만, ‘없을 무(無)’를 품은 손성무라는 이름은 자신을 비우고 하나 됨을 살아가겠다는 그의 결단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것은 한 사람의 결단으로 끝날 수 없는, 한국교회가 함께 삶으로 답해야 할 기도이기도 하다.

